손으로 띄우는 종이새 '연'
겨울철 파란 하늘에 흰 연은 그 풍경만으로도 정겨운 어린
시절의 상징이다. 봄의 불청객이던 황사가 사시사철 찾아오면서 청명한 겨울 하늘은 손꼽을 만큼 줄어들고, 추위를 잊고 연을 날리는 아이들의 행렬도 사라진 지 오래다. 연의
실종은 잿빛 하늘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내 어린 날!
어슬한 하늘에 뜬 연같이
바람에 깜박이는 연실같이
내 어린날! 아슴풀
하다.
하늘은 파랗고
끝없고
팽팽한 연실은 조매롭고
오! 흰 연
그 새에 높이
아실아실 떠놀다 내 어린날!
서정시인 김영랑의 시
‘연'은 아실아실 연자락에 어릴 적 시인의 추억을 담고 있다. 연날리기는 겨울철 동네마다 너른 곳의 언덕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겨울 놀이였다.
코끝까지 얼어버릴 듯한 추위 속에서 날리는 연이 제맛인 이유는 겨울에 우리나라로 북서풍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농사를 주업으로 하던 시절에는 농한기가 시작되면 아이도 어른도 삼삼오오 모여 연을 날렸다. 연날리기는 정월 대보름까지만 하고 그 후 연을 날리는 사람은 ‘고리백정’이라 꾸지람을 들었다.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얼레의 실을 모두 풀어
연을 멀리 날려 보낸다. 액연(厄鳶)이라 하는데 연에 ‘송액영복(送厄迎福)’ 또는 소원을 적은 글귀와 이름, 생년월일을 쓰고 날린다. 자신과 가족에게 닥칠 나쁜 일들을 연에 실어 보내거나 달집에 태워 버리는 풍습이다. 우리는 연을 새에 비유하여 날고 싶은 소망을 담았다. 하늘로 연이
솟아오르면 얼레를 쥔 사람이나 연을 구경하는 사람이나 모두 연에 마음을 싣게 된다. 연을 뜻하는 한자어
솔개연(鳶)은 새(鳥)에 줄을 맨다는 익(弋)을
붙여 만들었다. 손으로 만들어 띄우는 종이새인 것이다. 연의
명칭도 윗부분을 머리, 중간을 허리, 아래를 꽁수라 부른다. 머리 옆 양 귀와 배, 꽁수를 이어 목줄을 매는데 이 줄은 연의
비행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늘에서 이리저리 까부는 연은 목줄을 고쳐 매어 얌전하게 만들기도
하고, 균형을 잡지 못하고 뱅글뱅글 도는 병든 연은 대나무살을 매만져 병을 고쳐주어 날린다. 연을 새라 여겨 부르는 표현들이 참으로 지혜롭다. 그 겨울 하늘을
수놓던 종이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부산 삼락공원에서 처음 날린 연의 손맛을 잊을 수 없다
좌) 부산 배무삼연을 제작하고 있는 배무삼 장인
우) 배무삼 장인의 연결 가오리연
지난여름, 필자는
부산의 전통예술을 지켜 온 네 분의 장인을 만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어떻게 전수됐는지
어르신들께 듣고 싶었다. 이를 젊은 작가가 경험하고 그에게 전통문화의 우수성이 좋은 토양이 되길 바라는
자리였다. 지연장(紙鳶匠)은
연을 만드는 장인을 말하며 배무삼 장인(부산광역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21호)은 1973년부터 40년
넘게 ‘동래연’을 제작하여왔다. 동래는 예부터 민속 예술이 번성한 장소로 동래야류, 동래학춤, 동래지신밟기, 동래고무, 동래한량춤, 대금산조, 강태홍류가야금산조 등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와 부산광역시
지정 무형문화재로 전통문화가 전승하여 예술의 혼을 이어 온 곳이다. ‘동래연’은 이 지역에서 전수된 방패연으로 배무삼 장인은 줄 곳 부산 동래 방패연만을 생각하며 기술을 지켜왔다. 제각기 다른 크기의 방패연을 규격화하고 국제적으로도 그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부산에서 국제연날리기대회를 개최하여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처음으로 연결 방패연을 만들어 해운대 백사장에서 날리기도 하였다. 연은 세계 어느 나라에나 그 나라만의 고유한 연이 존재한다. 일본에는
색채와 그림 위주의 창작연이 많고, 중국에는 동물 모양의 연이, 유럽으로
가면 천으로 만든 큰 연이 있다. 우리 전통연은 가오리연과 방패연으로 대표된다. 연은 비행물체라 정교하고 세밀하게 만들어야 하며 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조형적인 예술성까지 겸비해야 한다. 방패연은 어느 나라 연보다도 과학적으로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는데 연의 형태와 구조가 특이하기 때문이다. 우선 방패연은 크기에 상관없이 사각모양이라 바람에 잘 뜬다. 가운데
둥글게 방구멍이 뚫려 있어 강한 바람에도 찢어지지 않고 날 수 있다. 특히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과
동래에서는 겨울 골바람이 세므로 세로 규격을 짧게 하여 센 바람을 잘 견디게 만들었다. 다른 지역의
연살은 납작한 대살을 사용하는데 동래연의 대살은 둥글다. 탄력성이 크고 공예적으로도 정교함이 돋보인다. 연 머릿살 가장자리를 2~3센티미터 뒤로 접어 배접하여 튼튼함을
더하고 앞을 볼록하게 부풀려 바람을 잘 가르게 하였다. 연줄은 상백사(常白絲), 당백사(唐白絲), 떡줄
등 여러 가지를 사용한다. 동래연은 양 귀에 빨강과 검정으로 1/4 원을
그린 ‘머리연’ 모양이며,
이 연을 ‘부산 배무삼연’이라 한다. 하늘에 뜬 연의 무늬로 날리는 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데, 개성적인
무늬들은 연이 멀리 날아갔을 때 자신의 것임을 알리는 표식이라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마에 반달 모양을
붙인 방패연은 ‘반달연’이다. 빛깔에 따라 ‘먹반달’, ‘청반달’, ‘홍반달’이라 부른다. 반달
대신 둥근원이 있으면 ‘꼭지연’이다. 색을 달리해 ‘먹꼭지’, ‘청꼭지’, ‘홍꼭지’라 한다. 연의
절반 아래에 색을 칠한 연은 ‘치마연’인데 사용한 색의 수에
따라 ‘이동치마’, ‘삼동치마’, ‘색동치마’라고 불렀다. 그
외에도 동이연, 초연, 박이연, 발연 등 종류가 참으로 많으며 지역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부르기도 한다. 가오리연은
잘 날고 띄우기도 쉬운 형태로 다른 나라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에 따라
낙지연, 가재미연, 꼬리연이라 하였다.
좌) 풍천 배무삼 장인 우) 전통연에 목줄 매는 법을 배우고 있다
좌) 부산 배무삼연 중) 병 난 방패연을 고쳐주는 모습 우) 전통 방패연 만들기를 함께 한 연지기들
부산민속예술관에는 배무삼 장인의 작업장이 있다. 이곳에서 동래연을 순서에 맞춰 만들어 보았다. 먼저 전통 한지인
순지에 자신만의 밑그림을 그린다. 연살을 깎는 칼로 귀살 아래를 적당히 긁어내어 하부가 바람에 유연하도록
가볍게 다듬는다. 불로 그을린 연살을 휘어 머리살 - 장살 - 기둥살 - 허릿살 순서로 종이에 붙인다. 이마종이를 뒤로 접어 붙인다. 마지막으로 양 귀와 방구멍, 꽁수 구멍에 목줄을 맨다. 연을 만들고 나니 이제 날릴 차례이다. 부산 낙동강 자락, 삼락공원에 가면 하늘을 활공하는 전통연을 만날
수 있다. 부산연날리기협회 회원들은 주말이면 어김없이 이곳에서 연을 띄운다. 연을 즐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남성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우리 전통연에 관심을 두고 찾아 온 것이 반가워 날리는 법도 알려주고 병이 난 연도 고쳐주었다. 연날리기를
직접 체험해보니 높이띄우기, 튀김을 주는 재주부리기, 연실을
얼려 끊어먹기 등 노는 법이 꽤 다양하였다. 연을 감상할 땐 드높이 연을 띄우고, 연싸움은 낮게 띄워 자신의 연을 상하·좌우·급회전 등 튀김질을 준다. 연날리기는 하늘로 연을 띄워 감상하는 놀이면서
동시에 연싸움을 겨루는 스포츠인 것이다. 연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얼레를 다루는 힘과 기술이
필요하다. 튀김을 잘 주어 상대의 연실에 올라타는 손놀림은 놀이에서 한발 앞선 정교한 기술에 더 가까웠다. 튀김을 주면 연이 왼쪽 오른쪽으로 기울고 이때 연실을 당기면 그 방향으로 연이 진격한다. 튀김질을 하고 당기면 연은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얼레를 풀어주고 당기면 연이 하늘로 솟는다. 연싸움에서는 예의 또한 중요하다. 연싸움 상대에게 먼저 도전을 청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면 본격적으로 겨루기 시작한다. 화려한 싸움의 기술 사이로 연하나가 맥없이 날아오르면
패자는 승자에게 한 수 가르침을 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넨다. 연싸움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정말 시간이
어찌 지나는지 모르게 흘러간다. “하나, 둘, 셋” 10미터 밖 연지기가 신호를 보낸다. 들고 있던 연을 살짝 띄워주면 재빨리 얼레를 누르며 실을 푼다. 흔들리며
당황해하던 연이 금세 바람을 타고 창공으로 떠오른다. 초보자의 서투른 얼레질도 연지기의 도움으로 어느새
다른 연들의 행렬에 고요히 머리를 들이민다. 우리의 연이 하나둘 하늘로 날아오르자 모두 넋을 놓고 하늘에
뜬 연을 바라본다. “자기가 만든 연이 날 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는데, 연을 띄울 때 무아지경이 됩니다. 동심이고 나이가 많고를 떠나서
그냥 연하고 노는 거죠.”라며 웃으시던 배무삼 장인의 말씀처럼 연하고 노는 법을 더 많은 이에게 전하고
싶어진다. 연을 날려 본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