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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적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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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 작가 :  로와정,   염중호 ,  최대진   기획  :  이지민   전시 장소 :  통의동 보안여관   전시 기간 :  11 월  18 일 ( 수 ) – 12 월 16 일 ( 수 )   관람 시간 : 12:00 - 18:00   주최 :  통의동 보안여관   후원 :  서울문화재단 ,  프랑스 문화원   문의 :  이지민  t. 010-8514-1165 [출처]   중성적 시대(Neutral Era)_11.18 –12.16 (통의동 보안여관 1942)   | 작성자   metalogue 통의동 보안여관은  2015 년  11 월  18 일부터  12 월  16 일까지 로와정 ,  염중호 ,  최대진  3 인전 《중성적시대 (Neutral Era) 》를 개최한다 .  《중성적 시대》전은  30, 40, 50 대를 지내는 각각의 예술가들이시간과 시대에 대한 각자의 사유 과정을 펼치는 전시형 프로젝트다 .  본 프로젝트에서는 한국과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3 인의 사진 ,  설치 ,  영상 등 최근 작업  18 여점을 집중 선보일예정이다 . 23 시  59 분에서  00 시  01 분이 되기까지  2 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변화하는 것들 ,  그리고 세월을‘년’이라는 작위적인 단위로 쪼개어 살아가고 기념하는 현대인들의 삶에 주목하면서 발족된 본프로젝트는 세 팀의 예술가가 시간과 세대에서 감각하는 지각과 인식을 작업으로 구현한다 . 전시 제목인...

Your action is prohibited 박윤주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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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주 개인전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 Your action is prohibited. 통의동 보안여관 2014.7.23 – 8.5 | 11 am – 7 pm   Opening 2014.7.25 6 pm 박윤주 작가노트   < 집단과 개인사이의 건강한 긴장감 > 시대는 여전히 집단의 지배하에 있으나 그에 굴하지 않은 체로 존재하는 ‘ 개인 ’ 이란 과연 무엇인가 ? 나는 집단과 개인 사이에 건강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법을 모색하고 가시화하는작업을 한다 . 개인의 독립된 자아는 집단에게 공공의 적이다 . 자아를 내세우고자기 판단을 신뢰하는 개인은 집단의 평화를 깨는 위험하고 거추장스런 존재로간주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나는 여자고 , 키가 작고 , 미모가 뛰어나지 않고 , 동양인이고 , 힘이 세지 못하고 , 어떤 소속 단체에도 동의하기가 힘들고 , 섹슈얼리티의 분류법에 혼란을 겪고있고 , 결벽증과 편집증이 있고 , 타고난 의심증으로 사람을 믿지 못한다 . 그런내가 예술가의 입장이 되면서 감성과 이성이 더 예민해지고 , 나를 가장 크게누르는 개념적 ‘ 적 ’ 이 누구인지 파악하게 된다 . 집단은 , 늘 반대편에 서 있는 벽이었다 . 그 시작은 가족이었고 , 다음은 첫 거대사회 집단과의 만남이었던 학교였으며 , 애인의 자기철학이었고 , 예술계였고 , 그리고 예술계를 포함하는 사회통념이었다 . 그것들은 뛰어넘을 수도 없고뛰어넘어보았자 딱히 나에게 이득이 되지도 않는 막힌 ‘ 벽 ’ 이었다 . 타고난 결벽증과 편집증은 늘 집단 안에서의 당연한 과정을 방해하는 해충 같은요소로 작용했다 . 소수단체보다 더 소수로서 ‘ 개인 ’ 의 독특한 정체성을 추구하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 마치 공자나 석가모니나 예수와 같은 우연과필연의 우주적 합의가 있어야 일어나는 기적 같은 신비가 필요한 차원이기때문이다 . 결국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며...

뱃놀이, 강상훈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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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 31 ~ 11. 13 am 11:00 – pm 6:00 통의동보안여관 Artspace Boan Opening 2012. 10. 31 _pm 5 기획 : 통의동 보안여관 총괄기획 : 최성우 / 기획 : 창파 지나간 미래를 떠도는 생채기들의 난파선   최금수 · 이미지올로기연구소 소장 1. 너무 현명한 오늘 “ 너희들은 아주 현명했다 / 하지만 너무 현명하지 않았나 ? / 너희들 거기 손에 달고 있는 게 근육 아니냐 ? / 그런 놈들 앞에선 일이 빗나가려야 빗나갈 수 없다 . / 그렇게 똑똑한 인간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 / 너희들한테는 / 순간적인 애정이나 / 바보같이 왈칵하는 게 없다고나 할까 / 어쩌면 너희들은 그런 / 자제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들어 갔다가 / 어쩌면 다시 빠져 나왔을지도 모르지 / 어쩌면 너무 많은 애정으로 감동 받은 / 너희들의 팟저로 인해 / 하지만 그걸 어쩌면 만회할 수도 있겠지 / 아직 잔정이 / 남아 있다면 . 너희들 코끝엔 , 단지 자연스러운 것을 / 들이대야 하니까 . / 짧고 굵게 말하지 : 너희에게 권한다 / 동참하라 내 투쟁에 . / 좀 비이성적여 보란 말야 !” 몇해전 라삐율에 의해 남한에서 상연되었던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미완성작 『팟저 - 단편』에서 팟저가 뭇 등장인물들에게 외친 말이다 . 물론 브레히트는 다중성격의 요한 팟저를 동물적 시대감각을 지닌 이기주의자 또는 아나키스트로 묘사했다 . 알다시피 그의 상황극은 대부분 전쟁과 학살의 시대에 국가와 계급 그리고 청산과 혁명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다루고 있다 . 물론 무자비한 살육들로 얼룩진 시대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꾼다는 것은 어찌보면 사치스런 일이다 . 미래에 대한 구름 잡는 설계보다는 치 떨리는 현실로부터 벗어나고픈 맘이 우선할 것이기 때문이다 . 낡은 것과 새 것의 갈등은 시간의 파장에 포획된 삶에서는 늘 존재한다 . 동전의 양면인 파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