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점점 더 깊은 층

통의동 보안여관은 2017년 첫 기획전으로 <과거의 점점 더 깊은 층>을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광장의 촛불과 가까웠던 보안여관의 장소성을 기반으로 '일상의 정치적 풍경'이라는 미시정치의 시선으로 착안되었다. 객원 큐레이터 박수지, 이현과 함께 진행된 이번 기획전은 ‘가상의 화자’라는 큐레토리얼을 갖는다. 가상의 화자인 ‘나’는 국민국가의 국민이자, 촛불을 드는 시민, 크고 작은 폭력에 저항하는 개인, 타자의 잠정적 이웃으로서 발화한다. ‘나’는 기억을 통해 세계와 싸우고 있으며, ‘나’의 기억은 수집, 서술을 통해 말 걸기를 시도하고 작가, 작품, 큐레이터, 관람객을 포개는 주체로 작동한다. 참여작가 강신대, 박경진, 양자주, 은주, 정윤석, 조은지 작가의 작품들로 국가주의로부터의 소멸된 개인부터 생활인들의 사소한 투쟁까지 현재적이고 기묘한 기표들의 그물망을 보여준다. ▶ 망각은 한밤중 낯선 길을 걷는 행위와 같다. 방황의 끝에 어딘가 도달할 것이라 가늠할 수는 있지만 장소도, 방향도 도무지 확실치 않다. 다만 어둠 속에서 벽을 더듬으며 어딘가로 이어져 있을 길을 추적해나갈 뿐이다. 역사적으로 거대한 재앙을 맞닥뜨릴 때마다 우리가 강력한 대항책으로 내세운 무기는 언제나 ‘기억’이었다. 기억은 공동의 상징물이나 특정한 이미지, 집적된 자료 등의 형태로 현실에 잔존하며 매 순간 과거를 상기시켜주고, 우리는 기억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면서 망각에 저항해왔다. 개인이 기억을 회복하지 못하고 망각 앞에 무력해질 때 과거는 소멸하고 공동체적 관계는 단절되며, 재앙은 다시 한번 움을 튼다. 재앙의 발생과 무관하지 않은 자들, 혹은 재앙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면서 권력을 유지하기 바라는 자들은 우리의 기억하기를 저지하기 위해 두 가지 방편을 모색한다. 기억 제거하기, 그리고 재단하기. 전자가 3S와 같은 자극적인 매체를 노출해 정치적 무관심을 유발한다면, 후자는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오랜 시간에 걸쳐 역사의 기억을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