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약하고 불완전하여 모순덩어리인 감각_ 김기석, 《기능적 인간》, 3F, 2019.11.30.-12.12
미약하고 불완전하여 모순덩어리인 감각
김기석, 《기능적 인간》, 3F, 2019.11.30.-12.12
글. 창 파 (실험실 씨 아트디렉터)
1.
예컨대 감각은 이러하다. 신체 바깥에서 일어나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체계이다. 빛, 소리, 크기, 거리, 높이, 형태, 진동, 접촉, 움직임 같은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변환한 뒤, 그 신호를 뇌로 전달한다. 감각은 지각의 토대이자 ‘나’를 제외한 외부를 판단하는 수단이며, 정보를 전달하는 메신저이자 통로인 것이다.
예컨대 감각은 이러하다. 버스 옆좌석에 앉은 이에게서 오이 향이 나자, 중학교 시절에 유행하던 오이 향 무스가 생각이 나고, 그것을 발라 가지런히 머리를 빗어넘긴 한 아이가 떠올랐다. 후각이 전한 정보는 저 먼 망각의 시간으로부터 희미하고 미세한 조각 하나를 소환하였다. 시공간을 압축하고 관통한 신호는 실제로 상상이 불가능한 정도로 도약하여 새로운 전개를 펼쳐낸다.
2.
김기석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감각이란 도미노 칩처럼 하나의 독립된 형태로 존립하지 못한다는 것을. 한 개의 칩이 쓰러지면 연쇄적으로 순식간에 에너지는 이동하고, 모든 칩으로 운동이 전이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굳이 그는 감각을 분절하고, 기계로 치환하였다. 시각과 청각과 후각과 촉각을 나누고 개체로서 독립성을 부여한 뒤 《기능적 인간》이라는 제목을 달아 두었다.
사실, 《기능적 인간》에 대한 그의 관심은 <Essence>(2015), <Watch Game>(2018)과 같은 구획된 공간 안에서 움직이고 마주치고 멈추고 다시 이동하는 사람들, 화면에 공을 던져 반응하는 영상처럼 상호 작용하는 관계성에 몰두하는 시기부터 이어져 왔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연결되고 작용하고 매개하는 방식은 《기능적 인간》에서 감각-신체, 본질-기능, 개인-사회로 그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김기석은 인간의 감각을 분절하고 명징한 특징만을 추출하여 단순한 기능을 갖춘 감각 기계를 고안하였다. 도식은 간단하다. 마름모꼴의 꼭짓점마다 명령함수가 위치한다. 감각은 각 점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프로세스로 기능한다. 대기상태에서 입력값이 주어지면 움직이기 시작하고, 값이 사라지면 정지한다. 인간이 유한상태기계로 치환되는 순간, 오이 향이 30년 전 한 아이로 도약하는 결과는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 ‘예’ 또는 ‘아니오’, ‘시작’ 또는 ‘멈춤’으로 도출되는 결괏값은 사회라는 틀 속에서 무수히 지정된 함수에 따라 소비되고 규정되는 인간의 모습과 겹쳐진다.
3.
전시장에 펼쳐진 감각들은 저마다 직관에 충실한 조형적 언어를 취한다. 그것은 시스템 비계, 파란 천막, 마네킹, 윙카호스처럼 날것의 물성을 고스란히 발산하는 사물로 구성된다. 이들은 열과 음성과 동작에 따라 반응한다. 즉, ‘감각 치환 기계(기술)’는 인간의 에너지를 수집하고 그에 반응하는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는데, 이는 노동력이 입력되어야 경제력이 상승하고, 필요한 자원을 습득하기 위한 소비처럼 입력에 반응이 도출되는 삶의 도식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벼려놓은 감각을 나의 감각으로 경험하여 본다. 먼저 <보이는 너머>라는 작품은 스크린, 열화상 센서 프로젝션과 마네킹으로 구성한다. 네 개의 마네킹이 줄지어 서 있고, 열화상 카메라가 이편을 비춘다. 백색 마네킹의 사이로 걸어가자 벽면에 영상이 실시간으로 송출된다. 마네킹을 포함한 다섯 신체 중에서 8등신의 우월한 신체들은 사라지고, 유일하게 화면에 색을 변화시키는 변수는 바로 나의 열에너지이다. 모노 톤의 픽셀은 내 몸의 열에너지를 받아 팩맨처럼 색이 변한다. 가장 밝은 노랑. 그 주변에 주황, 빨강, 보라, 파랑으로 온도의 단계를 나타낸다. 색채 큐브는 신체를 해체하고 형상을 가르며 무수히 무너지고 이동하고, 현실에서의 닿지 않는 감각의 영역을 시각화하고 교란하며 장면을 만들어 낸다.
다음은 청각의 영역이다. 네 개의 마이크와 마주 놓인 영상은 ‘일하기 working’, ‘먹기 eating’, ‘소비하기 shopping’, ‘잠자기 sleeping’를 주제어로 태깅된 유료 클립들이 모여 있다. <기능적 인간>은 마이크에 소릿값이 들어오면 영상 속 클립들을 재생한다. 이 구조는 감각의 설계도를 그대로 실행하고 있다. 소리(파장)가 발생하면 즉각 영상이 반응하고 아날로그 신호인 파장을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여 재생 스피드를 조절한다. 마이크에 가까이 서서 “아”하고 짧게 소리를 내어 본다. 영상이 잠시 돌아가더니 곧 멈추었다. 조금 더 톤을 높여 길게 파장을 만들어 본다. 음파의 피치가 올라가자 타자를 두드리는 손가락이 빨라지고, 쇼핑카트를 밀던 사람이 달려간다. 일하고 먹고 소비하고 잠자는 군상의 파노라마가 재빠르게 지나간다. 소리로 움직이는 군상은 마치 기능에 따라 판단되고 소비되는 물신의 영역에 놓인 인간으로 비친다.
팽창한 후각이 도드라진 <냄새 맡는 코>는 입방체 비계의 중앙에서 매달린 대형 조각이자, 종이 제작물로 만들어진 코, 밑에는 브라운관이 놓여있다. 센서가 움직임을 감지하면, 자연 이미지가 반복되는 화면을 향하여 수직으로 내려가고 되감아 올라간다. 털로 덮인 마그네틱 카드리더기와 달러($)가 부착된 마그네틱 카드 더미(<부드러운 결제>), 텅 빈 정육면체 프레임을 휘감은 윙카호스(<자극-반응>)까지, 이 감각들은 이번 전시에서 직관적인 표출을 담당한다. 반응에 응답하고 따라가는 후각, 부드러운 결제라는 모순에 놓인 상황처럼 극단적이거나 생략된 감각을 제안하고 있다.
결국, 김기석이 분리하고 떼어내고 해체하여 제시한 감각 기계들은 미약하고 불완전하여 모순덩어리의 감각들이다. 그는 온전하지 않은 감각들로 《기능적 인간》이란 어떤 것인가 되묻는다. 삶의 보편적 가치와 기준을 가늠하는 척도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인간다움이란 어떤 것이고 사회적 존재로 기능하고 살아가기만을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스스로 그리고 세상에 반문한다.